같은 질문이어도 누가, 어떤 뉘앙스로 하느냐에 따라 나의 대답은 달라진다. 적절한 거리를 두지 않고 훅 하고 다가와 질문 세례를 던지는 사람들은 그에 맞는 대꾸법으로 응대한다. 나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키면서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대화를 종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누군가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을 때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는 것이 좋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나 상사가 갑자기 "요즘 바빠?"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아, 과장님이 더 바쁘실 것 같은데요. 요즘 어떠세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러면 보통 상대는 여기 답하면서 자신이 질문한 의도를 함께 말하기 마련이다. 단순히 안부를 물은 것인지, 업무를 맡기기 위해서인지를 들은 후 나의 상황을 말해도 늦지 않다. 경험상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 갑자기 SNS로 그런 식의 연락이 온 경우는 대게 청첩장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이 경우에는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 하고 하고 되물어 질문의 의중을 파악한 후에 "축하해. 그런데 내가 요즘 좀 바빠서 결혼식에는 못 갈 것 같아" 정도로 대답할 수 있다.
질문자의 의도를 곧바로 알 수는 있지만 대답하기 불쾌한 경우에는 딴청을 부리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너 페미니스트지?"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네", "아니요" 같은 대답부터 하지 않고 "페미니스트가 정확히 무슨 뜻이에요?" 또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하고 물어보는 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쾌한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여성우월주의자를 페미니스트라고 하지 않나?", "네가 아까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같은 해명을 하다 스스로의 논리가 빈약함을 깨닫고 급히 화제를 돌리게 된다.
질문자의 의도를 모르더라도 대답하기 꺼려지는 질문, 논쟁이 예상되는 질문에는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차피 모든 사람과 토론을 할 수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최저 시급이 오른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같은 질문을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받았을 때는 그저 대화의 공을 상대에게 넘겨주자. 보통 상대가 나를 훈계하거나 떠보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쪽으로는 별로 생각을 안 해봤어요" 하고 나의 패를 내보이지 않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대화를 빨리 종료하는 기술이다. 이처럼 나의 공간을 문득문득 침범하는 사람들은 대게 나를 잘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다.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나의 깊은 감정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에게까지 나의 공간을 열어 보일 필요는 없다. 또 사람마다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감각이 달라서,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훅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관계를 이어가려면 나름의 대처법이 필요하다. 평정을 유지하면서 나만의 고유한 공간 감각을 고수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나를 지키는 법'과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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